부관참시(剖棺斬屍) / 사자성어 공부(51)
사자성어(四字成語) 공부 51일차
(1) 부관참시(剖棺斬屍) 쪼깰 부, 널 관, 벨 참, 주검 시
죽은 뒤에 더 큰 죄가 드러나 관을 꺼내어 참하는 극형
무덤을 파서 관을 헤쳐 시체를 꺼내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던 극형으로 연산군 때 성행했다.
김종직, 송흠, 한명회, 정여창, 남효온, 성현 등이 이 형을 받았다.
(2) 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 구, 소 우, 한 일, 털 모
아홉마리 소 중에서 털 하나를 뽑는다는 뜻.
대단히 하찮은 것을 말할 때 쓰는 표현.
이 사자성어의 유래는 다음과 같은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후의 명저 [사기(史記)]를 집필한 사마천은 남성의 생식기를 제거하는 궁형(宮刑)을 당했습니다. 이유는 사마천이 충신을 변호하다 화를 뒤집어쓴겁니다.
처음 사마천에 내린 형벌은 허리를 잘리는 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은 그 당시 받을 벌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허리를 잘리고 죽는 것, 둘째는 50만전을 바치고 사면 받는 것, 셋째는 궁형을 받고 살아남는 것인데 이 세번째 형벌은 선비들이 참아내기 어려운 형벌입니다.
결국 첫번째나 두번째, 즉 죽거나 돈을 내고 살거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는데 죽을 수는 없었고, 돈이 없는 사마천은 치욕의 궁형을 선택합니다.
그는 그 때 '제대로 된 역사서를 쓰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사기]를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궁형을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3) 포장화심(包藏禍心) 꾸러미 포, 감출 장, 재앙 화, 마음 심
나쁜 마음을 감추고 있다는 말이다.
중국의 춘추시대에 소국인 정(鄭)나라는 대국인 초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나라의 대부 공손단(公孫段)은 자기 딸을 초나라의 공자(公子) 위(圍)와 혼인시키려 하였다. 초나라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정나라의 수도로 손쉽게 진입하여 정복하려고 하였다. 이에 공자 위는 무장한 대부대를 이끌고 정나라로 향하였다.
정나라의 재상인 자산(子産)은 사태가 심삼치 않음을 깨닫고 자우(子羽)를 보내 그들을 성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도록 하였다. 자우는 공자 위에게 도읍이 협소하여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으니 성 밖에서 혼례를 치르도록 하자고 말하였다. 그러자 초나라 측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은 예법에 맞지 않으며 초나라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하면서 성 안에서 혼례를 치를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자우는 "나라가 작은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대국에만 의지하면서 조금도 방비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혼인의 인연을 맺은 뒤에 대국의 힘에 의지하여 안정을 구하려 한 것인데, 그대들은 나쁜 심보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小國無罪, 恃實其罪. 將恃大國之安靖己, 而無乃包藏禍心以圖之)"라고 말하였다. 초나라 측에서는 자신들이 속셈이 드러났음을 알고 계획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무기를 휴대하지 않고 성 안에 들어가 신부를 맞이하겠다고 하자, 정나라는 그제서야 허락하였다.
이 고사(故事)는 《좌씨전》의 '소공(昭公) 원년(元年)'조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포장화심은 마음 속으로 남을 해칠 나쁜 심보를 품고 있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구밀복검(口蜜腹劍:말은 달콤하지만 뱃속에 칼이 있음)이나 소리장도(笑裏藏刀: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음)와 비슷한 의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포장화심 [包藏禍心] (두산백과)
(4) 십팔사략(十八史略) 열 십, 여덟 팔, 사기 사, 다스릴 략
중국 남송(南宋) 말에서 원(元)나라 초에 걸쳐 활약했던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중국의 역사서.
원명은 《고금역대
십팔사략(古今歷代十八史略)》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에서 시작하여
《신오대사(新五代史)》에 이르는 17종의 정사(正史), 송대(宋代)의 《속송편년자치통감(續宋編年資治通鑑)》 《속송중흥편년자치통감(續宋中興編年資治通鑑)》 등 사료(史料)를 첨가한 십팔사(十八史)의 사료 중에서, 태고(太古) 때부터 송나라 말까지의 사실(史實)을 발서(拔書)하여 초학자를 위한 초보적 역사교과서로 편찬하였다.
원서(原書)는 2권이었으나 명(明)나라 초기에 진은(陳殷)이 음과 해석을 달아 7권으로 하고
유염(劉剡)이 보주(補注)를 가하여 간행한 것이 현행본이다. 사실의 취사선택이
부정확하였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았고, 사료적 가치가 없는 통속본이지만, 중국왕조의 흥망을 알 수 있고, 많은 인물의
약전(略傳)·고사(故事)·금언(金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십팔사략 [十八史略]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