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장엄한 숲 -김남조-

홍통사 2017. 7. 24. 09:07

장엄한 숲



 

삼천 년 된 거목들의 숲은

겨우내 끝이 안 보이는 설원(雪原)

나무들은

그 눈 벌에 서 있습니다

 

어느 겨울

그 중의 한 나무가

눈사태에 떠밀려 쓰러질 때

하느님이

품 속에 안으셨습니다

나직이 이르시되

아기야 쉬어라 쉬어라 ……

 

하느님께선

이 나무가 작은 씨앗이던 때를

기억하시며

거대한 뿌리에서 퍼져나간

젊은 분신들도 알으십니다.

 

쉬어라 쉬어라고

하느님의 사랑은 이날

자애로운 안도(安堵)이셨습니다

가령에

삼천 년을 노래해온 새가 있다면

쉬어라 쉬어라고 하실 겝니다

이 나무 기나긴 삼천 년을

장하게 맥박쳐 왔으니까요

 

레드우드 품종의

그 이름 와워나로 불리우는

이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수면이요 안식이며

이후 삼천 년 동안

그는 잠자는 성자일 겝니다

 

장엄한 숲에서

이 겨울도

끝이 안 보이는 아득한 설원에서

 

- 김남조, '장엄한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