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행궁 입구인 신풍루>
■ 위치 : 경기도 수원시 수원화성 내
■ 화성행궁 소개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戰亂), 휴양, 능원(陵園)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그 용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國事)를 계속 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행궁 등이 있고, 온양행궁은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으로 조선 세종이래 역대 왕이 즐겨 찾던 곳이다.
그리고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 바로 화성행궁이라 할 수 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으며 1790년에서 1795년(정조 14∼19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다. 그 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다.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화성부 유수(留守)가 집무하는 내아(內衙)로도 활용하였다. 정조는 1789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 이후 이듬해 2월부터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陵幸)을 거행하였다. 이때마다 정조는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조가 승하한 뒤 순조(純祖) 1년(1801) 행궁 옆에 화령전(華寧殿)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眞影)을 봉안 하였고 그 뒤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머물렀다. 화성행궁은 성곽과 더불어 단순한 건축 조형물이 아니라, 개혁적인 계몽군주 정조가 지향하던 왕권강화정책의 상징물로 정치적, 군사적인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화성행궁에서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1시에 무예24기 공연이 화성행궁 입구인 신풍루 앞 광장에서 펼쳐진다.
무예24기란 정조의 명을 받은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1790년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 의 24가지 무예를 말한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전래의 무예는 물론,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 수용하여 '24기(技)'로 정리한 무예교범서로서 부국강병의실학정신이 담겨 있으며 무예24기 공연은 보는이로 하여금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수원화성운영재단 내용 발췌>
▲ 매일 11시에 화성행궁 입구 신풍루 앞에서 무예24기 공연이 펼쳐진다.
▲ 무예24기 공연
▲ 무에 24기공연
▲ 행궁 안에서 바라본 신풍루
▲ 수원화성을 만들때 사용했다는 거중기
▲ 화성행궁 입구 앞에는 건물들을 철거하고 공원조성이 한창이다.
▲ 좌익문
▲ 봉수당
▲ 봉수당내 모습
▲ 봉수당내 모습
▲ 화성행궁을 배경으로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했었다.
▲ 집사청
▲ 화성행궁 내부 모습
▲ 남군영
▲ 팔달산 기슭에서 바라본 화성행궁 모습
▲ 화성행궁 광장 조성 조감도
▲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청룡열차를 타고 수원화성을 관람하면 편리하다. (편도 성인1500원)
▲ 팔달산 기슭에 있는 정조대왕 동상
▲ 화성행궁 뒤편으로 수원화성곽을 따라 팔달산 정상에 오르면 볼 수 있는 서장대 (입장료 성인 1,000원, 수원시민은 무료)
▲ 수원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화성장대)
▲ 화성행궁의 구조도
출처 : 좋은세상 둘러보기
글쓴이 : 【백두대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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