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四字成語) 공부 30일차
(1) 낙양지귀(落陽紙貴) 강이름 낙, 볕 양, 종이 지, 귀할 귀
낙양의 종이값이 오른다는 뜻으로 저서가 호평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될때를 말한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유명한 시인이던 좌사(左思)는 제나라 서울 임치(臨淄) 출신으로서, 가난뱅이인데다 교제도 낮고 생김새도 추했지만 문장 하나는 탁월했다. 그는 일 년간 고심하여 『제도부(齊都賦)』를 썼는데, 이것은 자기 출신지인 제나라 서울의 사물에 관한 내용의 작품이었다. 흡족한 그는 계속해서 『삼도부(三都賦)』를 쓰기로 작정했다. ‘삼도’란 삼국 시대의 위(魏)나라 서울 업(鄴), 촉(蜀)나라 서울 성도(成都), 그리고 오나라 서울 건업(建業)을 뜻했다.
그가 작품 구상에 한창일 때, 누이가 갑자기 궁중으로 불려 올라가게 되었다. 그도 함께 서울인 낙양으로 이사했고, 뛰어난 문사가 기라성처럼 많은 중앙 무대의 분위기에 자극을 받았지만 집필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내 공부가 부족한 탓이야!’
이렇게 절감한 좌사는 스스로 비서랑(秘書郞)이 되어 궁중에 보관되어 있는 각종 문헌을 읽어 학문적 시야를 넓혔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십 년 만에 『삼도부』를 완성했건만, 처음에는 작품의 진가를 알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공(司空) 장화(張華)가 좌사의 집에 찾아왔다. 장화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말했다.
“참, 듣자니까 오래 공을 들인 작품을 최근에 완성했다지요?”
“그렇습니다.”
“어디 내가 한번 봐도 괜찮겠소?”
“글쎄요, 변변찮은 작품이어서……”
좌사는 선뜻 내키지 않는 데도 『삼도부』를 장화한테 보여 주었다. 중앙 문단에서 이름을 날리는 시인이기도 한 장화는 『삼도부』를 읽어 보고 격찬해 마지않았다.
“아니, 이런 훌륭한 작품을 가지고 무슨 당찮은 겸양이오. 내가 보기엔 반고(班固)나 장형(張衡)을 능가하고 있소이다.”
반고와 장형은 한나라 때 사람으로서, 반고는 『양도부(兩都賦)』, 장형은 『이경부(二京賦)』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대시인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작품을 뛰어넘었다는 장화의 극찬은 금방 화제가 되었고, 글을 읽는다는 사람들은 지식인 반열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앞다투어 『삼도부』를 베껴다 읽었다. 그 바람에 ‘낙양 안의 종이가 갑자기 동이 나서 종이값이 폭등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양지귀 [洛陽紙貴] (고사성어 따라잡기, 2002. 5. 15., (주)신원문화사)
(2) 상가지구(喪家之狗) 죽을 상, 집 가, 어조사 지, 개 구
상각집의 개라는 말로, 기운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얻어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빈정거리는 말투로 표현하는 말이다.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와 《공자가어(孔子家語)》의 〈곤서편(困誓篇)〉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말 공자(孔子)는 노(魯)나라 정공(定公) 때 대사구(大司寇:지금의 법무부 장관)를 맡았지만 왕족 삼환(三桓)에게 배척당해 노나라를 떠났다. 이후 공자는 십수 년 동안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어떤 군주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공자가 56세에 정(鄭)나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제자들과 길이 어쩌다가 어긋나 동문에서 제자들이 찾아오기만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어떤 이가 스승을 찾아다니는 자공(子貢)에게 자신이 본 공자의 모습을 "이마는 요 임금과 같고, 목은 순·우 임금 때의 명 재상 고요(皐陶)와 같으며, 어깨는 자산(子産)과 같았소이다. 그러나 허리 밑으로는 우 임금보다 세 치나 짧았고, 그 초췌한 모습은 마치 상갓집 개와 같소이다[其顙似堯 其項類皐陶 其肩類子産 然自要以下 不及禹三寸 纍纍若喪家之狗]."라고 설명해 주었다. 자공은 스승임을 알아차리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공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공자에게 들려주니 공자는 웃으면서 "외모는 그런 훌륭한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상갓집 개와 같다는 말은 맞았을 것이다[孔子欣然笑曰 形狀未也 而似喪家之狗 然哉然哉]."라고 말하였다.
오랫동안 떠돌아다녔고, 정치적으로 실의에 빠졌으며, 정나라에서도 뜻을 이루지 못한 공자의 모습은 말 그대로 볼품 없고 처량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사람이 공자를 상가지구라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상갓집 개라고 천박하게 비유한 것에 대해서도 화를 내지 않은 것이 공자 자신만의 넉넉한 재치이며, 위대한 성인의 덕을 지닌 것에 대한 반증이다. 상가지구는 초상 집에서 주인이 돌보지 않으므로 굶주려 수척해진 개를 말한다. 원래 공자의 초라한 모습을 비유한 것에서 유래한다. 한국 속담에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가 있는데, 이는 오갈 곳이 없어 그 처지가 보기에 딱하고 불쌍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상가지구 [喪家之狗] (두산백과)
(3) 용전여수(用錢如水) 쓸 용, 돈 전, 같을 여, 물 수
말 그대로 돈을 물쓰듯 낭비한다는 것이다.
(4) 정중지와(井中之蛙) 우물 정, 가운데 중, 어조사 지, 개구리 와
정저지와라고도 한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황허강[黃河]의 신 하백(河伯)이 물의 흐름을 따라 처음으로 바다에 나왔다. 그는 북해에까지 가서 동해를 바라보면서, 그 끝이 없음에 놀라 탄식하였다. 그러자 북해의 신 약(若)이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여름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견이 좁은 사람에게 도를 말해도 알지 못하거니와, 그것은 그들이 상식의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자기의 추함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더불어 큰 진리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자(莊子)》〈추수편(秋水篇)〉의 이야기이다. 장자는 이 장에서 하백과 약의 문답 형식을 빌어, "도(道)의 높고 큼이나 대소귀천(大小貴賤)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구별을 잊고 도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중지와'는 '부지대해(不知大海)'와 함께 한 구를 이룬다. 즉,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한다[井中之蛙 不知大海]'로 쓴다. '정와(井蛙)' 또는 '정저와(井底蛙)'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중지와 [井中之蛙]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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