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四字成語) 공부 21일차
(1) 읍참마속(泣斬馬謖) 울 읍, 벨 참, 말 마, 일어날 속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공정한 일의 처리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유비(劉備)와 조조(曹操)가 죽은 뒤 그 자식들과 강동의
손권(孫權)이 각각 ‘솥발의 형세’를 이루어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삼국
시대를 열어 가던 서기 227년의 일이다. 촉(蜀)나라 승상 제갈량(諸葛亮)은 위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성도(成都)를 출발하여 한중(漢中)을 장악한 다음 기산(祁山)으로 진출하여 위(魏)나라군과 격돌하게 되었다. 당시 위나라 국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마의(司馬懿)는 스스로 20만 병력을 이끌고 기산에 달려와 방어진을
구축하고 사활을 건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갈량은 위나라군의 방어진을 깨뜨릴 방안 마련에 골몰했는데,
결전에 앞서 가장 고심한 문제는 보급 수송로의 요충인 가정(街亭)을 어떤 장수에게 맡기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잘
싸우는 병사라 할지라도 배불리 먹어야만 기운이 나는 법이니, 전쟁에서 보급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호적수로
불릴 만큼 전략에 통달하고 계략이 무궁무진한 인물이었고, 제갈량 역시 사마의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가 가정을 기습 공격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전군을 지휘해야 하는 자기가 가정에 가서 지키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구를 보내야 안심할 수 있을까?’
제갈량이 한참 고심하던 중에 스스로 그 임무를 맡겠다고 나선
사람이 마속(馬謖)이란 젊은 장수였다. 제갈량의 절친한 친구일 뿐 아니라
조정 중신인 마량(馬良)의 아우이고, 머리가 비상한 데다 병서를 많이 읽어
군략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는 촉망 받는 인물이었다.
“자원하고 나서니 가상하긴 하다마는 자신
있는가?”
“제가 병법서라면 읽지 않은 책이 없음은 승상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 제가 큰 싸움을 감당하는 것도 아니고 일개 전략 요충을 지키는 일 하나 해내지 못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상대는 노회하기 짝이 없는 사마의야. 만약 가정을
잃게 되면 이번 출정은 헛일이 되고 우리는 회군해야 하네.”
“정 그렇게 못 믿으신다면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참형에 처하더라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구나. 다만
군율(軍律)에는 사정(私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렇게 다짐한 제갈량은 마속더러 지형지물을 십분 이용해 길을
굳게 지켜 위나라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섣불리 자리를 움직이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한 마속은 나름대로 지세를
살펴본 결과 제갈량의 작전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병력으로 적의 진출입로를 방비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는 것 같고, 그보다는 산 위에다
진을 쳐서 적군을 유인해 역공을 취하는 것이 병법 이론상 훨씬 효과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산 정상에 진을 치고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위나라군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결전을 서두르지 않고 산기슭을 포위한 채 시간만 끌었다. 그럴수록 마속의 병사들은 식수와 식량이 동이 나서
큰 고난을 겪게 되었다.
‘승상의 지시에 따를 걸 공연한 짓을
했구나!’
마속은 크게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자책감과 분노로 입술을 깨문 그는 결사의 각오로 돌진해 내려와 포위망을 뚫으려고 했으나 부하들 대부분은 죽고 그는 구사일생으로
제갈량이 있는 본진에 도착했다. 가정을 적에게 내줌으로써 중원 진출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제갈량은 한중으로 군대를 물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명령을 어긴 마속은 군율에 따라 참수형에 처해졌다. 마속의 재주를 아낀 많은 사람들이 선처를 호소했지만, 제갈량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는 참으로 아까운 인재요. 다른 사람도 아닌 마양의
아우이고, 나 역시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오. 그러나 사사로운 정 때문에 군율을 어기면 그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이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 여러 장수와 병사들에게 어떻게 기강을 말할 수 있단 말이오?”
마속은 울면서 제갈량에게 절한 다음 형장으로 향했고,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읍참마속 [泣斬馬謖] (고사성어 따라잡기, 2002. 5. 15., (주)신원문화사)
(2) 이관규천(以管窺天) 써 이, 대롱 관, 엿볼 규, 하늘 천
대롱을 통해 하늘을 본다는 말로, 좁은 소견으로는 전체를 파악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말.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다.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살펴 보았자 그 전체의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춘추시대 말기의 일이다. 뒷날 동양 의학의 元祖(원조)이자 醫聖(의성)으로도 일컬어지는 扁鵲(편작)이 괵이라는 나라에 갔을 때였다. 마침 병을 앓던 이 나라의 태자가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편작은 궁정의 의사를 찾아 갔다. 태자의 병이 무슨 병인가를 물어보고 현재의 상태를 알아낸 편작은 말했다.
"그럼 내가 태자를 소생시켜 보겠습니다." 편작이 팔을 걷고 나서자 궁정의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무책임한 말씀은 삼가시오. 어린애도 그런 말은 곧이듣지 않을게요." 그러자 편작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하듯 말했다.
"당신의 의술 따위는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며(以管窺天)' 좁은 틈새로 무늬를 보는 것과 같소." 잠시 뜸을 들였다가 편작은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내 말을 정 믿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번 태자를 살펴보시오. 그의 귀가 울고 코가 벌름거리는 소리가 들려올게요. 그리고 양쪽 사타구니를 쓰다듬다가 음부에 손이 닿으면 그곳은 아직 따뜻할 것이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진찰해보니 편작이 말한 그대로이자, 궁정의사는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괵나라 임금은 편작에게 매달렸다. 편작이 침을 놓자 태자는 소생했고 치료를 더하자 20일 후에는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편작이 죽은 사람도 소생시킬 수 있다고 말하자 편작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을 소생시킨 게 아니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고친 것뿐이오'"
(3)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 이, 밭 전, 싸울 투, 개 구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대의명분없이 싸우거나 헐뜯을 때응 비유한 말이다.
옛날 우리나라 8도의 사람들에 대한 특징을 4글자로 평가한 4자평(四字評)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 따르면 경기도 사람들은 경중미인(鏡中美人), 곧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다. 충청도 사람들은 청풍명월(淸風明月), 곧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같은 품성을 지녔다. 전라도 사람들은 풍전세류(風前細柳), 곧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는 버드나무와 같다.
경상도 사람들은 송죽대절(松竹大節), 곧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가 특징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암하노불(岩下老佛), 곧 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와 같은 품성을 지녔다. 황해도 사람들의 특징은 춘파투석(春波投石), 곧 봄 물결에 돌을 던진 것과 같다. 평안도 사람들은 산림맹호(山林猛虎), 곧 산 속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와 같다. 마지막으로 함경도 사람들은 이전투구, 곧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악착같다.
이 4자평은 조선 태조의 물음에 정도전(鄭道傳)이 답한 말이라고도 하는데, 함경도 출신인 태조가 함경도 사람의 특징이 이전투구라는 말을 듣고는 안색이 붉어졌다고 한다. 그러자 정도전은 함경도는 석전경우(石田耕牛), 곧 돌밭을 가는 소와 같은 우직한 품성도 지니고 있다고 말하여 태조의 기분을 누그려뜨렸다고 한다.
이처럼 이전투구는 원래는 함경도 사람의 강인하고 악착스러운 성격을 특징짓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들처럼 볼썽사납게 다투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전투구 [泥田鬪狗] (두산백과)
(4)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질 인, 놈 자, 없을 무, 원수 적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는 뜻이다.
진실로
어진
정치를 베풀면서
백성을 자신의 몸처럼 여기는
군주에게는 자연히
백성들이 따르게 마련이어서
반대하는 세력이 없게 되고, 비록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인심이
떠나지 않아 총칼로도 어찌할 수 없게
된다는 뜻으로, 곧 인자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편에 나온다.
양 혜왕이 맹자에게
전쟁에서
진 치욕을 어떻게 하면 씻을
수 있는지를 묻자, 맹자는 인자한
정치를 해서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줄이며,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게 하고, 장정들에게는 효성과 우애와 충성과
신용을 가르쳐 부형과 윗사람을
섬기게 한다면, 몽둥이를 들고서도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견고한
군대를 이길 수 있다고 대답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들은 백성들이 일할 시기를 빼앗아
밭을 갈지 못하게 함으로써
부모는 추위에 떨며 굶주리고, 형제와 처자는 뿔뿔이 흩어지고 있습니다. 저들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는데, 왕께서 가서 정벌한다면 누가 감히 대적하겠습니까? 그래서 이르기를 '인자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仁者無敵)'고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 '인자무적'은
맹자가 지어 낸 말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전해져 오던 것을 인용한 것이다. 서투른 글이 총명함보다 낫다는 뜻의 '둔필승총(鈍筆勝聰)'도 같은 이치이다. 무릇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붓이
칼을 꺾는 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자무적 [仁者無敵]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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