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공부방

하석상대(下石上臺) / 사자성어 공부(76)

홍통사 2017. 6. 8. 18:39


사자성어(四字成語) 공부 76일차






(1) 하석상대(下石上臺)     아래 하, 돌 석, 윗 상, 대 대


      아랫 돌을 빼어 윗돌을 굄, 어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임시변통으로 하는 모양


 


아랫돌을 꺼내 윗돌을 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무너지고 말겠지요. 그러니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보다는 임시로 적당히 메워 놓는 것을 말합니다. 






(2)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를 타, 뫼 산, 갈 지, 돌 석


다른 산에서 나는 보잘것 없는 돌도 자기의 옥을 가는데 필요할수 있다는 뜻.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신의 학덕을 연마하는 데에 도움이 됨을 비유한다. 《시경》 〈소아편(小雅篇)〉에 실린 '학명(鶴鳴)'의 '…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다른 산의 못생긴 돌멩이라도 옥을 갈 수 있다네!)'라는 구절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과 함께 인간의 인격수양과 관련한 명구(名句)로, 흔히 '타산지석으로 삼다'라고 쓴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산지석 [他山之石] (두산백과)






(3) 태산북두(泰山北斗)     클 태, 뫼 산, 북녁 북, 말 두


     태산과 북두칠성이라는 말로 많은 사람이 본받을 만한 그 분야의 권위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한유(韓愈)는 중국 당나라 때의 문학자이자 사상가로, 이백(李白),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당나라의 대표적 4대 시인의 한 사람이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히는 중국 제일의 문장가이다. 그는 25세 때 진사과에 급제한 뒤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까지 되었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佛事)를 극간하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강직했던 한유는 그후에도 여러 차례 좌천과 파직을 당하기도 했는데, 만년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뒤 57세의 나이로 죽었다.

한유는 순탄하지 못했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학문과 사상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친구인 유종원 등과 고문운동을 제창하여, 고문이 송대 이후 중국 산문 문체의 표준이 되게 했으며, 그의 문장은 그 모범으로 알려지는 등 후세에 영향을 주었다. 사상 분야에서는 도교와 불교를 배격하고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여 공자 이래의 유학을 왕성하게 하는 데에 힘써 송대 이후의 도학(道學)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결과 후학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되었다.

《당서(唐書)》 〈
한유전(韓愈傳)〉의 찬()에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당나라가 일어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의 문장으로 여러 학자들의 스승이 되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학설이 천하에 떨쳤으므로 학자들은 그를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우러러보았다." 여기서 '태산'은 글자상으로는 큰 산이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오악(五嶽)의 하나로서 성산(聖山)으로 우러러보는 산이다. '북두'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는데, 북두칠성이 모든 별의 중심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는 데서 '북두'라는 말 자체도 뛰어난 인물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오늘날 이 말은 '태두(泰斗)', '산두(山斗)'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며, 특히 학술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산북두 [泰山北斗] (두산백과)






(4) 성사재천(成事在天)     이룰 성, 일 사, 있을 재, 하늘 천


   제갈량이 했던 말로  "모사재인 성사재천"에서 유래된 말이다.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성사는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사람이 노력해도 결국 안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을 해결하려고 꾀를 내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운수에 달렸다는 뜻이다. 인간이 노력하여 일을 이루어내는데 도움을 얻지 못하여 이루지 못하는 일도 있다는 말이다.

중국 원()나라 때의 소설가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삼국시대 촉한(蜀漢:220∼263)의 정치가이자 전략가인 제갈 량(諸葛亮:181∼234)의 말에서 유래한다.

제갈 량은 오()나라의
손권(孫權:182∼252)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위()나라 조조(曹操:155∼220)의 대군을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대파하였다. 촉한의 제1대 황제 유비(劉備:161∼223)는 제갈 량을 재상에 등용하였다. 유비가 죽은 뒤 제갈 량은 다시 오나라와 손잡고 위나라와 항쟁하였는데, 위나라 사마 의(司馬懿:179∼251)의 군대를 호로곡이라는 계곡으로 유인하여 불을 질러 공격하는 화공(火攻)으로써 몰살할 수 있었으나 그순간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려 계획을 이룰 수 없었다. 제갈 량은 몹시 탄식하면서 "계략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어서 강제로 할 수 없다[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라고 하였다.

사람이 힘써서 일을 꾀하는데, 그 일의 성사여부는 오로지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사재인성사재천 [謀事在人成事在天] (두산백과)